과반을 넘어 다수의 사회 구성원이 수용적 태도를 훌륭하게 습득하면, 누가 생산적인 활동을 하나요? 자신에 대한 수용적 태도가 생산성과는 거리가 먼 것 같습니다.
Doni의 답변
여기서 제가 이런 주장을 하는 배경이 언급되어야 합니다. 저는 이제 '노동'이 개인이 세상에 개입하는 본질적 창구를 하고 있던 마르크스의 시대에서 벗어나 '생산적이기에 노동하는 것이 아닌'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즉, AI가 인간의 많은 생산활동을 대체할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에서 이야기합니다. 인구의 필수재 수요를 부양할 기본소득은 제공할 수 있는 사회를 기대합니다.
사실 AI가 다 먹여살리면 '수용하거나 말거나 딱히 어떤 의미가 있는가'라는 질문이 예상되는데, 저는 '그럼에도 인간은 스스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권리를 지켜내야 하기 때문에' 수용이 필요한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인식하는 현대 사회의 가장 큰 위험은 경제적 위기가 아닌, '인간의 주권 상실' 입니다.
수용이라는 원칙의 함의는 '인간의 이성이 성공할 조건을 훨씬 제한적으로만 긍정하자'라는 것 입니다. 저는 제가 합리적이지 않은 상황이 합리적인 상황보다 훨씬 많음을 이해하고 있기에, 저의 이성이 실패하더라도 실패를 보완할 수 있는 시스템을 준비하는 것이 여유로울 때 할 수 있는 최선의 대비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저는 수용의 원칙에 더해, '인간은 환경적 위협의 해소에 본인이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추어야 한다'라는 원칙을 내세워 앞으로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합니다. 정치적 양극화의 실패 사례처럼, 개인의 이성이 실패하더라도 사회가 무너지지 않으면서도 개인이 마음먹으면 불합리한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시스템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