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수용과 투쟁이 대립할 때 항상 수용을 우선시함'이라는 핵심 명제를 삶의 전반에 걸쳐 일관되게 적용할 때, 투쟁을 '취미에 가까운 수준의 능동성'으로 제한하는 것이 합리적인 판단의 구체적인 경계선은 무엇입니까?
Doni의 답변
그 사람의 '수용적 태도'가 현실적 요소를 얼마나 완충할 수 있는지에 따라 달렸다고 생각합니다. 신선과 같은 이상적 수준에 이른 수용적 태도를 이미 갖추었다면, 환경이 존재에 대한 위협을 가하더라도 그 위협을 피상적으로 느끼고 수용을 관철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충분히 유한함을 긍정하지 못한 상황에서 투쟁을 취미로만 억지로 여긴다면, 현실적 의미에서의 투쟁을 소홀히 하여 확보하지 못한 자원이 초래한 위협에 크게 좌초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유한함을 '물리적 실체로서의 죽음' 정도까지 확장해보면 조금 더 직관적입니다. 애초에 실존적 질문에 대한 것이니까요. 저는 물리적인 죽음에 크게 연연하지 않지만 '저작물을 통해 기억됨으로써의 존재의 영원성 확보'와 같은 대안들에 의존합니다. 제 수용의 수준에서는 생명의 위험과 같은 대가가 따르는 '투쟁의 경시'는 감당할 수 있으나 그보다 더한 대가를 치루어야 한다면 감당하지 못하고 후회할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인지하고, 예견하고, 대응할 수 있는 사회적 문제를 경시하다가 대응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친다면 크게 후회할 것 같습니다.
이렇듯 절대적인 구체적 경계선은 없고, 개인의 상황에 따라 유동적이라고 답하겠습니다.